림킴 케이팝 K팝 김예림 아시안 여성 페미니즘
가수 림킴의 EP 앨범 ‘제너아시안(Generasian)’ 커버. 사진: 림 킴 제공
Culture

‘여성’과 ‘동양인’ 정체성 강조한 림 킴의 이유 있는 변신

림 킴은 소속사 없이 새 앨범을 내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다.
Junhyup Kwon
Seoul, KR

한 가수가 변신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독특했다. 분장이나 치장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녔던 것을 내려놓는 방식이었다. 이 가수는 국내 유명 소속사를 나왔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앨범 제작 비용을 충당했다. 외부의 목소리보다 자신에게 집중했다. 여성과 동양인. 자신의 과거이자 동시에 현재, 미래이기도 한 정체성을 마주했다.

“혁명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처럼 이 가수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했다.

이 가수는 15일 타이틀곡 ‘옐로(Yellow)’와 ‘몽(Mong)’ 등 6곡이 담긴 미니앨범(EP) ‘제너아시안(Generasian)’을 발표한 림 킴(김예림)이다. VICE는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림 킴은 2011년 ‘슈퍼스타K3’에서 듀오 투개월로 3위를 차지하면서 가요계에 입문했다. 이후 미스틱 스토리에 소속돼 솔로로 활동했다. 몽환적인 목소리와 차분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2016년부터 소속사 없이 앨범 작업을 했다. 지난 5월 3년6개월 만에 힙합 스타일의 디지털 싱글앨범 ‘살-기(SAL-KI)’를 내고 변신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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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E: 새 앨범으로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림 킴: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다.’ ‘아시아에도 이런 아티스트가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늘 선례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고 틀렸다고 하는 사회잖아요. 남과 다른 길을 걸어도 잘 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어요.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성’과 ‘동양인’에 초점 맞춘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흐름에서 동양인만 소외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앞에서 말해보고 싶었어요. 아시아에도 멋진 아티스트가 많다고.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살기도 하고 여행 다니거나 음악을 들을 때면 답답할 때가 있었어요. ‘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물은 왜 많지 않을까’하고요.

사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어렸을 때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일을 시작하면서 인식하게 됐어요. 밖의 시선이 날 자꾸 여성으로 보니까 ‘내가 여성이라는 게 중요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죠. 케이팝에서는 여성 가수들이 가진 이미지가 명확하잖아요. 예쁜 외모. 왜 꼭 그래야 하지 의문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불편하더라고요.

‘나’로 살아가려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인가.
나니까 나로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이상해요. 내가 나로 사는 게 행복이라기보다 내가 나로 살아갈 때 더 큰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원래 태어난 당연한 모습이잖아요.

일부 팬은 특유의 몽환적인 목소리를 그리워한다.
(부정적인 평가에는) 사실 크게 동요되지 않아요. 언제든 제가 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거든요. 꼭 목소리를 공격적으로 내야 한다거나 몽환적으로 내야 한다는 강박도 없어요. 순간마다 어떤 표현을 하고 싶은가에 따라 달라요. 이 앨범 한 장만 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요. 평가에 흔들리지 않아요.

사실 전에 노래할 때 나온 목소리는 말할 때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에요. 애를 써야 나오는 목소리거든요. 제 진짜 목소리가 아닐 수 있는 거죠.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라고 생각해요. 색깔이 세거나 약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요즘 예전에 비해 목소리가 공격적으로 발현된 부분이 있어서 놀라신 분도 있을 것 같아요.

앨범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냈다. 이유는.
텀블벅(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도 저 같은 사람이 이런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이런 방식이 흔하지 않으니까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큰 회사나 자본의 도움 없이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공개적인 플랫폼을 통해서 보여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에서 말하는 건 항상 정해진 정답이 있죠. 크라우드 펀딩은 온라인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제가 소위 말하는 선례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고 기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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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로 앨범을 내기 위해 필요했던 것도 있었어요. 기존의 가요 기획사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럴 바에는 크라우드 펀딩을 하면서 의미도 전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돈도 돈이지만 의미있는 프로젝트였어요.

약 2000명이 9000만원을 넘게 후원했다.
저와 같은 목마름이 있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시는지 볼 수가 없잖아요. 제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껴서 큰 에너지를 받았죠. 후원해준 모든 분들이 팬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뜻에 힘을 실어주신다는 의미로 후원해주신 것 같아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
‘여자 가수는 예쁘고 노래 잘하면 돼.’ 이게 답이었다면 사실 맞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이 기준에 맞지 않아도 가치가 있을 수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큰 흐름을 바꿀 수도 있는 거고요. 이런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런 흐름을 최대한 크게 이어나가고 싶어요.

Junhyup 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