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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 사진: 아워즈 제공
Culture

에픽하이 타블로가 말하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루머

타블로가 가슴 아픈 기억을 꺼내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한다.

VICE와 라디오 방송국 아이하트의 팟캐스트 ‘오센틱: 타블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사실 이선웅은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다. 가수 활동명 ‘타블로’로 알려진 그는 한국 힙합계뿐 아니라 대중 음악계를 주도했던 인기 트리오 에픽하이의 리더다. 케이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건 비교적 최근이다. 하지만 타블로는 멤버 미쓰라진, DJ투컷과 함께 활동하면서 훨씬 전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에픽하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3년 첫 앨범을 내며 데뷔했다. 영국 런던과 호주 시드니,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무대에 서며 자리 잡았다. 2016년 한국 대중문화 가수 최초로 미국 유명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코첼라)’에서 공연했다.

데뷔 후 19년이 지났지만 인기는 여전하다. 에픽하이는 지난 14일 정규 10집 앨범 ‘에픽하이 이즈 히어 下(Epik High Is Here 下)’를 내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다음 달부터는 북미 29개 도시 투어를 하고 4월에는 다시 한번 코첼라 무대에 오른다. 남부럽지 않은 타블로이지만 12년 전만 해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때는 그가 가수 생활의 정점에서 학력 위조 의혹에 휩싸여 일상을 잃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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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아워즈 제공

타블로는 에픽하이로 성공하기 전에도 이미 대다수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3년 반 만에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를 졸업했다. 영문학 학석사를 동시에 받았다. 다른 음악인에게서 보기 드문 이력이었다. 이색 이력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하지만 그는 의지와 상관없이 문화 뉴스에서 사회와 정치 뉴스로 끌려 나왔다.

안티팬들은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루머는 시간이 지나면 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악성 루머는 갈수록 심해졌다.

타블로는 서울의 한 녹음실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논란을 두고 입을 열었다. 그는 VICE와 인터뷰에서 “솔직히 날 이제 어떻게 소개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때는 영국 공상과학(SF) 드라마 ‘블랙 미러’가 아직 공개되지도 않았던 시기였어요. 전 국민이 절 괴롭히려고 합심한 것 같았어요. 어떤 말을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망상에 빠지기로 합심한 것처럼요. 제가 미쳤거나 모두가 미쳤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무슨 말을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타블로는 한국에서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캐나다에 이민 갔다. 그의 부모님이 자녀들이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고 내린 결정이었다.

타블로는 “형은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워야 했다”며 “아버지가 그렇게 강제했다”고 말했다. 이어 “형이 대학 진학까지 2년 남짓 남았을 때 아이비리그에 입학하길 원했다”며 “우리가 막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왔을 때라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형과 누나뿐 아니라 본인도 비슷한 압박에 시달렸다. 부모님은 타블로가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중에 진학해 의사나 변호사, 교수가 되길 바랐다. 이것도 아니라면 그가 세계적인 노벨상 수상자 같은 사람으로 자라길 원했다. 

부모님은 여름 휴가 중 미국 횡단 가족 여행 때 스탠퍼드대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위압적인 캠퍼스 내 교회 밖에 서서 막내아들이 꼭 이 학교에 진학하기를 기도했다. 기도가 통했는지 몇 년 후 바람은 현실이 됐다. 그는 결국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다.

타블로는 학위 2개를 획득해서 졸업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 활동을 했다. 그렇게 에픽하이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인기가 솟구치며 학력도 함께 조명을 받았다. 유명세에서 학력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좋은 롤모델이었다. 동시에 래퍼로서의 저항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청년의 우상이 되기도 했다.

2009년까지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한국에서 힙합이라는 장르를 대중화했다. 타블로는 단편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을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도 올랐다. 또 인기 배우 강혜정과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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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트리오 에픽하이. 사진: 아워즈 제공

하지만 바로 그해 10월부터 루머가 시작됐다. 당시 ‘왓비컴즈’라는 인터넷 이용자는 에픽하이 6집 앨범을 설명하는 기사의 댓글 창에 이와 같은 글을 남겼다.

“타블로 학력 사기가 나한테 걸린 이상 죽어도 못 벗어나… 자수해, 자식아. 네 형하고 누나도 벌써 걸렸어… 캐나다에서 적응도 못 하고 중학교도 퇴학당하고선 한국으로 돌아와 감히 미국 대학을 팔아 사기를 쳐? 미국 사립명문대 나왔다고 사기 치면서 한국에서 그 모양 그 꼴로 사냐? 한심한 자식들아, 거짓말도 비슷하게 해라.”

아무도 이 글의 파급력을 상상하지 못했다. 댓글이 달리고 몇 달 후 이상한 소포 한 상자를 받았다. 타블로는 “회사로 나에 관한 음모론들이 잔뜩 적힌 서류가 담긴 배달왔다”며 “서류는 전반적으로 왜 내가 사기꾼인지를 설명하는 자료였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루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로 인정되리라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일이 많았다. 곧 딸이 태어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타블로는 딸이 태어난 2010년 5월 2일 트위터에 “신비로운 기적의 날. 오늘 오전 11시 5분 예쁜 딸아이가 태어났다”며 “혜정이(강혜정)와 우리 아기 모두 건강하다”고 적었다. 이어 “너무 행복해서 눈물 난다”며 “그동안 고생이 너무 컸던 내 여자 세상 최고”라고 덧붙였다.

타블로는 “인터넷에 댓글이 쏟아졌다”며 “일부는 (출산을) 축하하는 글이었지만 다수가 ‘왜 해명하지 않느냐’고 공격했고, 어떤 이들은 ‘그냥 죽어라’라고 했다”고 말했다.

‘왓비컴즈’가 만들어낸 루머는 점점 확산했다. 2010년 5월 네이버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약칭 타진요)’가 탄생했다. 이들은 의혹을 조직적으로 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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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에픽하이 콘서트. 사진: 아워즈 제공

타블로는 “타진요가 진실을 원하는 모임이라는 뜻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이름”이라며 “진실을 전혀 추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타진요가 어떻게 탄생한 건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부는 단순히 타블로가 망하는 걸 보고 싶었던 안티팬이 시작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카페가 단순히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주장한다. 왓비컴즈는 더 거대한 음모론을 꾸며냈다. 타블로가 상류층이라 언론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몇 주 만에 온라인 커뮤니티는 급격히 커졌다. 매일 게시글에 댓글이 수백개씩 달렸다.

회원들은 타블로가 스탠퍼드대를 다니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혐의만 꾸며낸 게 아니었다. 증거가 될 만한 정보를 찾아다녔다. 예컨대 스탠퍼드대 교수와 학생에게 메일을 보내 타블로를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성적증명서를 올려달라고도 요구했다. 심지어 타블로의 학위증을 찾아내 그들이 ‘실제 스탠퍼드 학위증’이라고 설명하는 사진과 비교하며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러 언론뿐 아니라 스탠퍼드대에서도 학위가 진짜라는 신빙성 높은 기사가 쏟아졌다. 심지어 기사를 통해 성적증명서도 공개됐다. MBC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옛 교내 교수와 행정 직원, 친구를 만나 타블로가 스탠퍼드대에 다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떤 증거도 타진요를 설득할 수 없었다. 무엇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음모론은 어느새 들불처럼 퍼지면서 거대해졌다. 타블로는 외출하면 행인들이 소리를 지르고 욕하는 바람에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쯤 되니까 싸울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가장 악의적인 이들을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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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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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홍익대 부근의 한 식당에 그룹 에픽하이의 사진과 사인이 걸려 있다. 사진: 구민지

타블로는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음악에 기댔다.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작곡만 했다. 그렇게 2011년 첫 솔로 앨범 ‘열꽃’을 냈다. 앨범은 여러 나라 차트의 정상을 휩쓸었다.

타블로를 둘러싼 음모론은 음악과 관련이 없다. 사실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유명인에 대한 깊은 불편함을 키운 건 미성숙한 인터넷 문화와 가짜뉴스였다.

결국 타블로는 2013년 타진요 회원들과 법정 공방 끝에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건 타블로와 에픽하이의 일부가 됐다. 루머는 대중이 타블로를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마저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금까지도.

“어떤 사람은 절 단순히 뮤지션으로 보지만 다른 누군가는 곡절 많은 사람으로 봐요. 절 볼 때 무엇을 떠올리고, 어떤 모습에 관심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죠. 그래서 그냥 ‘안녕하세요, 타블로예요’라고 소개해요. 판단은 상대에게 맡기는 거죠.”

팟캐스트 ‘오센틱: 타블로의 이야기’는 스테퍼니 카리유키와 구민지, 케이트 오즈번, 덱스터 토머스 2세, 재닛 리, 스테퍼니 브라운, 샘 에이건이 함께 취재,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