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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퀸으로 변신해 공연 중인 디에고 가리호(왼쪽). 격투 중인 가리호. 사진: 에이미 라미레스/ 필 램버트
LGBTQ

무대 위에서는 드래그 퀸, 링 위에서는 복싱 선수

이 남성은 낮에는 복싱을 하고 밤에는 각선미를 뽐낸다.
SL
translated by Sowon Lee
KR

언뜻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은 복싱과 드래그 쇼. 이 둘의 교차점을 찾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41세 남성 디에고 가리호는 둘을 모두 즐긴다. 온몸을 타투로 장식해 거칠어 보인다. 하지만 강한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섬세함이 필요한 엔터테이너로도 활동한다.

가리호는 멕시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밀입국해 살아왔다. 젊은 시절 방황하면서 수감 생활도 거쳤다. 2006년에는 프로 종합격투기 선수로 데뷔했다. 링 위에서 우승을 7번 거머쥐었다. 그러다가 안과 질환인 망막 박리를 앓으면서 격투기 선수 생활을 중단했다. 하지만 싸움 본능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2018년에 맨손 복싱 선수로 복귀했다. 과거보다 더 격한 스포츠를 하면서 현재까지 우승과 패배를 한 번씩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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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호가 드래그 퀸 롤라 피스톨라로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에이미 라미레스

가리호는 두 가지 상반되는 별명으로 불린다. 링 위에서 복싱 선수일 때는 총 두 자루라는 뜻의 ‘도스피스톨라스’이고 무대 위에서 드래그 퀸일 때는 ‘롤라 피스톨라’다.

롤라로 공연을 해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는 남들이 볼 때 물과 기름 같은 드래그 쇼와 복싱이 그리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둘이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VICE가 때론 각선미를 뽐내고 때론 남성성을 자랑하는 그를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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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E: 얼굴 가격과 다리털 왁싱 중에 중 뭐가 더 아픈가요? 
디에고 가리호:
당연히 왁싱이 훨씬 더 고통스럽죠. 그런데 더 아픈 게 뭔 줄 아세요? 인조손톱을 붙이고 있다가 떼어내는 작업이에요. 정말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러워요. 그에 비하면 복싱하다가 얼굴 몇 대를 맞는 정도는 신경도 안 쓰는 편이에요.

얼굴을 맞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닌 건가요?
맞는 건 견딜 수 있어요. 정교한 기술을 가진 건 아니지만 경기에 나가면 전력을 다해요. 아무리 많이 맞아도 맷집으로 버티죠. 그래서 저보다 강한 선수도 자주 이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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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호가 프로 종합격투기 선수 톰 쇼아프와 경기하고 있다. 사진: 필 램버트

맨손 복싱을 시작한 계기가 뭔가요?
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다가 망막 박리가 생겨 2012년에 어쩔 수 없이 은퇴했어요. 수술은 성공적이었어요.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죠. 의사가 다른 한쪽 눈도 똑같이 안 좋아질 수 있다고 경고하더라고요. 하지만 격투기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맨손 복싱을 연습하기 시작했죠. 언젠가 장갑 없이 상대와 싸워보고 싶었거든요. 그 정도로 격투기를 많이 좋아해요. 시력을 모두 잃는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요.

드래그 쇼는 어쩌다 시작했나요?
6살 때 어머니 속옷을 입고 사진 찍은 적이 있어요. 살면서 전통적 남성상을 경험하지 못했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사촌은 동성애자예요. 아마 그래서 여성적으로 행동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 같아요. 제가 동성애자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과 성적 지향이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죠.

드래그 쇼를 좋아하는 이유는요?
몇 년 전 감정 지능에 관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익숙한 환경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것을 해보기로 했죠.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과 관심받는 것을 좋아해요. 마침 드래그가 생각났을 때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바로 춤 수업을 수강했어요. 또 귀를 뚫고 전신 왁싱도 해봤죠. 하이힐을 신고 걷는 방법도 배웠고요. 옷을 잘 아는 사람에게 도움도 받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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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호가 한 맨손 복싱 경기에서 항복한 후 피를 흘리고 있다. 사진: 필 램버트

무대에 서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첫 드래그 쇼 무대에 서기 전에는 격투기 경기에 나가기 전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어요. 격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상대와 같은 방에서 경기를 기다린 적이 있죠. 서로를 응시하며 ‘이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쇼에 나갈 때도 똑같았어요. 작은 방에 8명이 들어가 서로를 뜯어보며 기다렸죠. 하지만 긴장은 그리 안 했어요. 대담한 편이거든요. 아니면 두려워야 할 상황인지 파악조차 못 하는 멍청이일 수도 있고요.

드래그 쇼 세계의 텃세는 없었나요?
오히려 진심 어린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도요. 놀라운 건 격투기 선수들도 응원해줬다는 거죠. 그들도 드러내고 싶은 비밀이 있나 봐요. 

격투와 드래그 쇼가 비슷한가요?
무술과 드래그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어요. 무술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거대한 신체 역경을 의지로 극복해내는 과정에 있어요. 드래그도 마찬가지로 전통적 남성성을 이겨내는 거죠. 특히 유색인종 중에 트랜스젠더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억압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자살률도 제일 높아서 사회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응원을 받아야 해요.

극단에 끌리는 건 왜 그런 건가요?
어린 시절에 지구가 곧 멸망할 거라고 확신했어요. 6살 때 멕시코에 살았어요. 어느 날 집에 초인종이 울려서 살펴보니 선교사가 밖에 서서 있더라고요. 하지만 현관문을 열어주지는 않았어요. 그가 밖에서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어요. 어린 마음에 그 말에 꽂혔던 거죠. 뉴스에서 자연재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세상의 종말이 오고 있다고 점점 확신했죠. 그래서 인생도 충동적으로 살고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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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호가 드래그 퀸으로 변신해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 에이미 라미레스

긴장하는 상황을 찾아다니나요?
어릴 때 경험이 지금의 삶에 큰 영향을 줬어요. 사실 어렸을 때 괴롭힘을 당했죠. 외톨이처럼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어요. 항상 모든 것이 창피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아예 수치심을 모르는 정체성을 만들어내서 사는지도 모르겠네요. 어렸을 때 창피당한 기억이 많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할 거라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경기에서 상대가 한 발 물러설 때 한 발 나아가요. 하지만 트라우마는 항상 마음에 있어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매일 그 상처와 투쟁하면서 살아요.

배출구를 찾았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드래그 쇼와 격투기로요.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대련을 해요. 누굴 때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몇 대 맞고 싶어서요.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져요. 싸울 때는 모든 문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요. 오직 경기에서 이기는 데에만 집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