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무당 김주형(34)씨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은 볼 수 없는 귀신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귀신 같은 것을 자주 봤어요. 5살 때 누워 있으면 시퍼런 부엌칼이 떠서 날아오고 8살 땐 자고 있는 제 자신을 유체 이탈해 봤어요. 고등학교 땐 처녀 귀신, 승천하는 용도 봤죠.”
주형씨는 대학에 진학해서야 이런 일을 겪은 이유를 설명할 만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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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피오줌을 싸며 움직이질 못했어요. 너무 아팠죠. 병원에 간다고 달라지지 않았어요. 신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괜찮아졌죠.”
주형씨는 당시 겪은 증상이 무당이 돼야만 낫는다는 ‘신병’이었다고 설명했다. “신들이 신병으로 인간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게 해서 신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2014년 무당이 돼서 8년간 찾아오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었다.
주형씨는 VICE와 인터뷰에서 무당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잇는 ‘매개자’라고 말했다.
그는 손님의 점괘를 봐주거나 굿을 한다. 특히 자신 있는 건 ‘조상 점’이라고 했다. “조상의 맺힌 한을 풀어줘야지 살아 있는 사람의 (얽힌 삶도) 풀어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는 산 사람이 현실에서 죽은 조상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다고 설명했다.
“하루는 손님 점을 보는데 바다가 보였어요. 할머니랑 할아버지 두 분이 손을 잡고 계셨어요. 그래서 손님에게 그걸 말했더니 놀라셨죠. 두 분이 바다에서 동반 자살을 하셨대요.” 주형씨는 이런 경우 굿을 해서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그를 찾는 손님은 힘든 사람이다. 악재를 연달아 겪었거나 영문 모를 일을 겪었거나. 이들은 서울 성북구에 마련된 그의 작은 공간을 찾아 풀기 힘든 말을 털어놓는다. 대부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고민 보따리를 조심스레 푼다.
그는 매개자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충이 남의 고통을 함께 느낄 때라고 전했다. “예약 전화만 받았는데도 한쪽 팔을 못 썼어요. 알고 보니 상담 온 분 어머니가 살아 계신 분이었는데 팔 수술을 하셨더라고요.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팔이 불편했죠.”
무당하면 남몰래 품은 고민을 척척 맞추고 미래도 훤히 내다보는 사람을 떠올린다. 흔히 평범한 사람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레니얼(1980년대~90년대 태어난 세대)인 주형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사실 (점괘가)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어떻게 해결하느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죠.”
주형씨는 무당이 ‘해결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 겪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점괘를 맞추는 일은 상대에게 신뢰를 주고 의지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20대 후반 남성이 찾아왔어요. 그 친구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었죠. 자고 있으면 공중에 물건이 날아다닌대요. 그래서 잠을 잘 수 없다고 토로하더라고요. 굿을 한 뒤로 잠도 잘 자고 초자연적인 현상도 겪지 않고 새로운 직장도 구했다고 했어요.”
그는 무당으로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라고 말했다.
주형씨는 무당이 종교인을 넘어 전통과 현대를 잇는 ‘예술인’이라고 믿는다.
그는 자신을 “국가무형문화재 제90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의 이수자”라고 소개했다. 굿판을 벌일 때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의 핵심인 작두 그네를 탄다. 그는 “단상에서 접신해 작두 그네를 타고 마당놀이처럼 대사도 하고 퍼포먼스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북 굿인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은 정작 북한에선 더는 전승이 안 된다고 알고 있어요.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신격화돼 있으니까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제대로 배워서 (후대에) 남겨야겠다는 문화적인 책임감을 항상 지니고 있어요.”
무속인 단체 대한경신연합회와 한국역술인협회는 등록 회원이 각각 30만명, 미등록 회원이 2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중 진짜가 몇 명인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죠.”
그는 사기꾼이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생겨난 무당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인정했다. 하지만 “(무속 신앙이) 우리 안에 자연스럽게 물든 문화 유전자(DNA)”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당을 ‘미신’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 “(무속 신앙은) 모르는 사이에 습관처럼 배어 있어요. 어떻게 그걸 없는 것 취급하고 살 수 있겠어요?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DNA에 남아있잖아요. 그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형씨는 무당으로 활동하기 전에 미술을 공부하고 공연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요즘도 무당이 쓰는 소모품을 직접 제작하고 예술 활동을 이어 나가려고 한다. 무당을 ‘종합예술인’이라고 정의하고 모든 활동이 무당의 일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딱히 무당을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틀에 박혀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게 제가 다른 무당과 다른 점이에요. 단순한 무당 활동이 아니라 다채로운 활동을 하는 ‘21세기 무당의 아이콘’으로 남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