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의 광대 마스코트가 광고에서 사라진 날짜를 모른다. 맥도날드 하면 바로 떠오르는 광대 캐릭터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로널드 맥도널드다. 올해로 캐릭터가 만들어진 지 58년째가 된다. 맥도날드의 캐릭터는 새빨간 머리카락과 선글라스, 입술, 새하얀 얼굴,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많은 사람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스코트가 맥도날드의 광고와 매장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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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상을 보면 캐릭터는 2004년 아이들에게 예수나 미국 대통령보다 유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맥도날드 매장 앞 벤치에 앉았을 때 광대 조각상의 뻣뻣하고 차가운 손이 우리 몸에 닿았던 게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하다. 이 캐릭터는 7년째 ‘실종 상태’다.
캐릭터를 만든 이는 미국 남성 윌러드 스콧이다. 1934년에 태어난 남성은 30세가 될 무렵에 라디오와 어린이 방송 진행자로 유명했다. 63년에 최초로 가발과 하얀 장갑을 착용하고 로널드 맥도널드 캐릭터 연기를 했다. 65년까지 TV나 광고물에 등장하면서 ‘행복한 햄버거 광대’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줬다. 캐릭터는 아이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뒤를 이어 캐릭터로 분장한 수많은 배우가 아픈 아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캐릭터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사랑받았다. 86년 손목시계로도 판매됐다. 또 2003년 어린이 메뉴 ‘해피밀’을 구매하면 따라오는 만화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맥도날드는 지난 9월 웹사이트를 통해 “로널드 맥도널드는 유감스럽게도 이제 영국의 광고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여전히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활동을 홍보하고 여러분이 즐거운 식사를 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공지했다.
영국 맥도날드의 홍보팀은 로널드 맥도널드가 갑자기 왜 사라진 건지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캐릭터가 2014년부터는 영국의 광고와 매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힐 뿐이었다. 구체적인 이유를 묻는 말에는 “죄송하지만,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변했다.
무언가 복잡한 내막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2014년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2016년부터 전 세계에서 광대로 분장한 사람이 행인을 놀라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점점 광대가 무섭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건은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번졌다.
맥도날드는 당시 성명을 통해 “광대를 둘러싼 적대적인 기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당분간 지역 행사에 로널드 맥도널드를 참여하게 할 때 신중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로널드 맥도널드가 광고에서 사라진 지 2년째가 되던 해였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자 인터뷰를 시도했다. 영국에서 3년 동안 맥도날드 광고 제작을 담당했던 남성은 “광대한테 고소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미국에서 로널드 맥도널드로 분장했고 72년에는 캐릭터 연기를 위한 공식 지침서까지 발행했던 남성 아이 제이도 “미안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고 인터뷰를 거절했다.
남성은 지침서에 “아이를 만나면 등만 토닥거려주고 절대 포옹해서는 안 된다”와 “햄버거가 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말라”와 같은 규칙을 적어넣었다.
로널드 맥도널드 캐릭터의 조각상을 제작했던 업체도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참고로 한 웹사이트에서 조각상의 다양한 포즈와 절도 사건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캐릭터로 분장했던 다른 남성도 인터뷰에 관심 있는 듯하더니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다행히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코얼리션’ 초창기 멤버 가이 무어가 인터뷰에 응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올해의 ‘맥해피데이’였다. 그는 2004~2014년에 미국 광고회사 ‘리오버넷’에서 근무하면서 맥도날드의 광고 캠페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4년은 패스트푸드의 해악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 사이즈 미’가 개봉한 해다. 영화로 인해 맥도날드는 어려움을 겪었다. 비만과 재료 문제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남성은 뒤바뀐 맥도날드의 운명을 되돌려야 한다는 중차대한 업무를 부여받았다.
이런 상황에 광대를 해결책으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는 “‘슈퍼 사이즈 미’랑 비슷한 다큐멘터리가 더 나오는 바람에 가벼워 보이는 광대를 앉히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캐릭터는 2004년부터 이듬해까지 건강한 식생활을 장려하는 영국의 광고에 등장했다. 하지만 결국 어른을 대상으로 광고를 하고 아이를 대상으로 한 광고는 접어야 했다. 미국의 한 비영리기관이 2010년에 캐릭터가 아이들을 착취하고 비만을 장려하는 데 일조했다는 혐의를 제기하면서 은퇴를 촉구하는 캠페인에 소매를 걷고 나섰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이 사회 운동을 계기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에 출연하기 어려워졌다.
무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건 모조리 지워야 했어요. 캐릭터가 분장을 지우면서 왜 일을 더 못하는 건지 직접 말한다는 광고 아이디어를 냈죠. 하지만 비웃음만 샀을 뿐 캐릭터가 나오는 아이디어를 이미 실현하기 어려웠어요.” 맥도날드는 캐릭터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길 꺼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캐릭터가 사라졌다는 소문을 적극적으로 나서 부정하지도 않았다. 무어도 캐릭터가 사라진 시기가 왜 하필이면 2014년이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맥도날드는 단순히 2014년이 돼서 캐릭터가 세련돼 보이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실제로 로널드 맥도널드는 그해 4월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상·하의가 하나로 붙어 있는 점프슈트 대신에 붉은 재킷과 나비넥타이를 착용한 채로.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냉담했다. 맥도날드는 한 달 후 새 마스코트를 선보였다. 빨간 상자 모양에 입이 큰 캐릭터 ‘해피’였다. 보면 결과를 짐작하겠지만 금방 잊혔다.
맥도날드의 캐릭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묻혔다. 하지만 맥도날드 자체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춰 기업을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2013년 매장 리모델링에 최대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쓸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새롭게 공개한 매끈한 큐브 형태와 차분한 색감의 건물 그 어디에도 노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광대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브랜드에 관한 신뢰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맥도날드는 2015년에 프렌치프라이가 감자로 만들어졌고 치킨너깃이 닭가슴살로 만들어졌다고 알리기 위한 광고를 진행했다. 이런 문제까지 다뤄야 하는 불신의 시대에 광대 캐릭터는 당연히 도움이 안 된다.
로널드 맥도널드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캐릭터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여전히 미국 여기저기에서 출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맥도날드 경영진 일부가 캐릭터를 내세우며 창립한 비영리기관 로널드맥도널드하우스재단(RMHC)은 아픈 아이들과 가족들을 아직도 도우며 왕성히 활동한다. 미국 완구 회사 펀코는 피규어 제작도 한다.
캐릭터의 골수팬들도 남아 활동 중이다. 필리핀에서 사업 중인 29세 젠틀 시그노는 맥도날드 관련 제품을 5000개 이상 수집했다. 인형과 게임, 피규어, 장난감, 시계도 있다.
그는 VICE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로널드 맥도널드를 왜 무서워하는지 이해한다”며 “온라인에서 나쁘게 묘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선 행사에 와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는 좋은 이미지를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슴이 아프다”며 “요즘 세대는 취향이 달라 없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추억을 파는 것도 때로 좋은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6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광대를 죽음보다도 두려워한다. 캐릭터가 돌아올 확률이 매우 낮아 보인다.
지금으로서 캐릭터는 실종 상태다. 광대 공포증 영향도 있겠지만 사실 촌스럽다. 캐릭터도 다른 광대와 함께 사라질 듯하다. “누구나 유통기한이 있다”는 무어의 말처럼.